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토록 열망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하면 들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 실마리 중 하나를 눅 3장에 기록된 세례요한이 빈들에 있었을 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빈들을 단순한 장소적 의미만으로 이해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 있었던 요한에게 임하셨다는 말씀의 신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빈들이라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환경적 특성 속에서 맺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적 특성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 임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빈들에 있다는 말, 즉 광야에
있다는 말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살 수 있는 상황 속에 있다는 말고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셔야만 음식을 구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주셔야만 물을 마실 수 있는 환경,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셔야만 광야의 추위와 더위로부터 생명을 지켜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살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살고, 하나님이 내버리시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고, 오직 나의 생존을, 나의
미래를,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의탁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것을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는, 나의 그 어떤 노력과 능력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해결될 수 있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우리는 비로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광야는 바로 이것을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 완전히 하나님께만 헌신된 사람,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으로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 때, 절망의 땅 광야는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 그래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땅, 은혜의 땅, 기적으로 땅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때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사순절만큼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 절제하며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빈들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세례요한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빈들로 내모시고 계시다면, 그곳에서 능력의 주님만을
바라보며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