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이 오셨다고 하여 눈이 많이 오던 지난 달 26일, 새벽예배가 끝난 후 시카고로 차를 몰았습니다. 이모님을 찾아뵙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시카고에 있는 후배에게 연락하여 함께 공부하던 몇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학부생일 때 보고 처음 봤으니, 세월의 흔적을 얼굴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를 본 동기와 후배들 모두 입을 모아서 제 얼굴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생긴 것이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형이 눈빛이 달라져서 이제는 쳐다볼 수 있고, 나를 때린 형이 이제는 안 때릴 것 같이 유순하게 변했다”고 합니다. 여러 정황을 들어보니 제가 학창시절 후배들과 동기 동생들한테 조금 무서웠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군복무 중 못 되기로 소문난 하사관 하나가 있었는데, 제가 짝대기 하나 달고 있을 때 너무 심하게 굴어서 순간 핑 돌아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들고 무섭게 노려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럴 때 남자들 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쾌한 듯 저를 툭 치면서 하는 말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을래?” 저야 손해 볼 것 없으니 대 환영이었지요^^. 군 제대 후 미국에 처음 왔던 해에도 불같은 성격은 사그라들지 않아 총을 들고 있던 말던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그리스 역사가 뚜키디데스의 말이 딱 맞습니다. 퇴학조치를 받을 수 있었던 1학년생, 하극상으로 영창갈 수도 있었던 이등병, 자칫 총기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미국생활 초년병… 정말 뭣도 모르는 때였습니다. 지금 하라도 하면 절대 안 하지요.
지금은 추억이 되버린 일들에 미소지으며, 뭣도 모르는 때였기에 몸을 사리지 않고 거인을 향해 전진 앞으로 할 수 있었던 다윗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 뜨겁게 했던 중학교 3학년 시절과 대학교 1학년 시절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성령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서 뜨거웠고, 그 결과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찬송가를 부르며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고, 기도하면서 데굴데굴 구르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기도원을 찾고… 참으로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완전히 열어놓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성경도 더 많이 읽고, 신학서적도 읽고, 성경에 관한 토론도 하는데, 용감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실천(행함)이 많이 부족합니다. 머리에서 걸러지는 것이 많은데, 생각이 많으면 실천이 부족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이탓인지, 머리에 든 것이 많아져서 그런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믿음으로 어떤 사랑을 하며 사십니까? Remain Bl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