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라는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디 출신인지 설명하는 단순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적대자들에게 이 표현은 예수님이 결코 메시아일 수 없다는 비아냥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예배하면 떠오르는 장소는 당연히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예수”가 아닌,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일컬어 神子(하나님의 아들)라 하지 않고 人子(사람의 아들)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높임받기에 합당한 분이 스스로를 낮추신 겸손의 사건이며, 사람들과 어우러지기 위한 공감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며, 이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동일한 하나님 나라 사역을 감당하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 사역이란 예배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라는 것이 교회라는 약속된 공간 속에서 약속된 시간에 행해지는 worship으로만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칼럼에서 썼듯이 모이는 예배(worship)는 반드시 흩어지는 예배(service)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디아코니아’입니다. 오늘날 비난받는 기독교가 회복해야 할 시급한 과제요, 성도들이 일상 속의 영성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신약에서 디아코니아는 세 가지 차원에서 사용되는데, 첫째,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디아코니아입니다. 두 말 할 것 없이 이것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낮아지셔서 우리를 섬겨주신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디아코니아입니다. 이것은 예배라 볼 수 있는데,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예배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코이노니아입니다. 이것은 봉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분명 예배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예배 속의 예배란 예배의 핵심(core)인 섬김을 말하는데, 섬김은 위의 세 가지 디아코니아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예배는 섬김의 마음으로 드려야 하며, 그러할 때 worship이 삶에로 적용되어 service로 연결됩니다. 섬김의 마음으로 예배하십니까? 여러분의 일상에 섬김이 있는 예배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Remain Bl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