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마음의 기도’라는 제목의 작자미상의 신앙시가 있습니다; “제가 남보다 부유하다고 생각될 때 / 저는 두렵습니다 /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제가 남보다 높다고 생각될 때 / 저는 두렵습니다 / 주님께서는 낮은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제가 남보다 지혜롭다고 생각될 때 / 저는 두렵습니다 / 주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제가 남보다 선하다고 생각될 때 / 저는 두렵습니다 / 주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장 낮은 마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작은 일에 큰 기쁨을 느끼게 하시는도다 ∙∙∙ ♬낮은 자를 높여주시고 아름다운 하늘나라 허락하시고 ♬ 내 모든 것 예비하시네 ∙∙∙” 하나님은 낮은 자의 하나님이 되시고, 낮은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를 주신다는 찬양이 있습니다.
영성의 시작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에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건물들 입구에 그려있는 무시무시한 그림들로 인해서 심장이 쪼그라들고 콩알만해져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나를 알고 나니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땅의 역사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마음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알고 이 마음에 맞추어 사는 것이 기독교의 믿음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영은 호흡으로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누워있는 흙덩어리가 의미 그 자체로 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생명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출애굽과 신약의 십자가 사건은 의미 없는 인생을 의미 있는 인생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입니다. 가치 없는 삶이 가치 있는 삶으로 바뀐 사건입니다. 그 사건 가운데 하나님의 호흡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다 버리고 다 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에요♩” 찬양 한 대목을 부르고 나니,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지고, 다 버린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임을 알게 되며, 하나님의 이러한 희생으로 회복된 인생은 동시에 그 마음 앞에 겸손히 자복하게 됩니다. Remain Bl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