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외로움이냐 괴로움이냐의 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남는 것은 외로움과 괴로움이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이 두 가지가 여러분 앞에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무엇을 선택하느냐와 선택한 것에 대해 얼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외로움과 괴로움의 정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잘 선택하여 만들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쌓고, 좋은 일들을 잘 선택하여 성실히 한다면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열심을 기울여도 외로움과 괴로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예측불허의 일들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근황을 전하며 기도를 부탁드리고 있는데, 신장로님께서 여러가지 검사를 통해 병명을 찾았고 이제 치료방법에 관해서 의사의 의견을 들을 차례입니다. 질병을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흩어진 가족들이 모이고 의사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면, 마음이 불안하여 떨게 됩니다. 그러나 장로님의 초점은 모인 가족들과 기도하는 성도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괴로움을 사그라뜨리고, 질병도 넘어서게 하는 비결을 장로님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이나 외로움과 괴로움을 심하게 체험한 분들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위해서 모두 육체적인 괴로움과 정신적인 외로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분에게는 괴로움과 외로움은 견뎌내는 것이 아닙니다. 견딘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고, 부활의 은총을 전하다 보니 부딪히는 세력들이 있었고, 그들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다 보니 고난과 고독을 무기 삼아 예수님과 바울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바울도 기쁨과 감사로 그 삶을 사셨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외로움과 괴로움 너머에 있는 영원한 평안과 영원한 생명의 삶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분명 고난이고 고독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감당하신 고난과 고독 덕분에 그분과 연합된 자들은 구원과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분명, 구원과 부활과 영생이 있는 기쁨입니다. Remain Bl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