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복습찬양예배를 위해서 일찌감치 집을 나섰습니다. 안개가 무겁게 내려 앉은 새벽공기는 중압감마저 줍니다. 그 경이로움이 피부에 닿았을 때 우박과 함께 앤아버를 기습한 토네이도가 생각나면서 다음 찬양이 마음에서 울렸습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 했나요…” 그리고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찬양이 이어졌습니다.
짙뿌연 안개를 헤치며 달리는 차 안에서 찬양과 함께 질문 하나가 가슴을 쳤습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날을 준비하며 사는가? 그날은 모두에게 예외가 아닙니다. 죽음의 날이며, 심판의 날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잔치가 끝나고 저 세상에서의 잔치로 가야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잔치는 부모형제를 잘 만나고, 머리가 좋고, 운이 잘 따르고, 줄을 잘 서고, 건강하고, 유능한 사람과 연결되고… 하는 등등의 조건에 따라 산해진미냐 간장 한 종지냐 하는 차이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의 잔치는 ‘믿음의 삶이 있느냐?’는 이 한 가지 조건에 따라 눈물도 한숨도 고통도 분노도 없고 오직 기쁜과 행복만이 가득한 잔치상을 받게 됩니다.
잔치는 이미 준비되었고, 너도 나도 초대되었습니다(눅14장).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잔치에 오지 않습니다. 밭을 샀기에 그것을 돌봐야 하고, 소를 다섯마리나 샀기 때문에 소를 시험해 보아야 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한결같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입니다. 심지어 큰 아들도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눅15장).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