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긴급상황이 닥치면 누르는 번호입니다. 사고를 목격하거나 밤늦게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할 때마다 신고정신이 투철한(^^) 저는 이 번호를 누릅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목회하시는 것을 보면서 밤낮 구분 없이 전화하는 성도들을 보면서‘목회자는 24시간 대기하는 911 요원인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달 전쯤 어느 토요일 새벽 12시 20분 교인에게서 전화가 들어왔는데, 금요성경공부를 위해 소리제거기능을 입력해 놓고 그것을 풀지 않아, 벨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5시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예배를 준비하던 저는 성도님의 전화번호가 적힌 전화기를 보며 무슨 일일까 궁금하여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간신히 잠든 성도님과 가족들이 깰까봐 전화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오만 가지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계와 자고 기계와 깨는 세상입니다. 알람도 전화기로 맞추고, 이런저런 메모나 스케줄도 전화기에 입력하고, 음악을 듣고, 사진이나 동영상도 전화기로 찍고, 인터넷도 전화기로 하고, 설교도 전화기를 보면서 하고… 버스와 전철 심지어 운전하면서도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전화기가 편리를 주고, 세상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대화할 때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눈을 떼지 못하는 우상과 같은 대상이 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휴대폰이 있기 전에는 집전화가 있어서 24시간 전화통화를 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갈수록 집전화를 설치하지 않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휴대폰은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들고 다니다 보니 직장이나 차에 두고 올 때가 있고, 배터리가 없어 방전되거나, 갑작스런 고장으로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몇 달 전 이러한 실상을 묵상하며 쓴 ‘아날로그로의 귀환’이라는 칼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각종 휴대폰이 진열된 핸드폰 가게의 쇼 윈도우를 들여다 보면서 말씀과 전화기 중 어떤 것이 더 많이 손에 있는지, 휴대폰 너머로 전달되는 나의 메시지에는 불필요한 말이 있지는 않은지, 그 메시지는 사랑과 생명과 희망을 담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911. “여러분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