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6일 주일 예배 설교
본 문: 시편 121:1절-8절
제 목: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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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 해 첫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들 모두에게, 우리 교회에 기쁘고 감사한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계획하고 소원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만 아니라 우리 이웃들, 해 아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전쟁과 가난과 질병과 고통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평화가, 참된 기쁨이 생겼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소원들이 과연 이루어질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짧은 시간을 통해서 볼 때도 소원은 소원이고,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 투성이입니다. 당장 어제 신문을 보니까 작년에 와시터너 카운티와 리빙스턴 카운티에서 2180개의 집이 은행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와시터너 카운티의 경우, 은행에 넘어간 집이 2002년에는 200개 조금 넘었는데 작년에는 1200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올 해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전망을 합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걱정이 됩니다. 집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깁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야 조금 절약하면 된다고 하지만 없는 사람들은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게다가 경제 사정도 좋지를 않고, Job 사정도 별로 좋지 않으니 없는 사람들은 얼굴에 주름이 펴질 날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 또한 걱정이 되지요. 성도님들의 헌금으로 교회 살림을 꾸려가는데,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느 누가 자신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교회에 더 많은 헌금을 내려고 하겠습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걱정이 참 많이 됩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에 제가 드린 말씀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 아래 놓여 있는 그 상황 한 가운데서 절망하고, 낙심하고,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현재와 미래는 어느 누가보더라도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예레미야는 미래에 대해서 소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그래도 살 길이 있지 않겠는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소망을 갖게 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생각, 그런 마음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면서 실망하고 낙심하는 것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어려움과 고민되는 문제가 있다고 얼굴 찡그리고 있는 것보다야 밝고 명랑한 것이 더 좋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을 마치 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 내가 꿈을 꾸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렇게 믿는 것을 좋은 믿음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시편 127편 1절부터 2절을 읽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 즉 파숫군의 깨어 있음이 헛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한 번 보십시오. “세우는 자의 수고”라고 했습니다. “파숫군의 경성함”이라고 했습니다.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눕는다”고 했습니다.

집을 세우는 자가 희망이 없겠습니까? 꿈이 없겠습니다. 자기의 집을 예쁘고 아름답게 짓고 싶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은 꿈을 갖습니다. 이 집에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 것을 기대하고 집을 짓는 것입니다. “세우는 자의 수고”라고 했지만 그 수고는 마지 못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해서 정말 그럴듯한 집을 지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생을 기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을 지키는 파숫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을 자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적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고, 쥐새끼 한 마리도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경계근무를 섰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계병이 성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경계를 잘 서도 구멍 뚫리는 곳은 있는 법이고, 본진의 군대가 과연 적의 침입을 막아설 수 있을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 사업을 하는 사람들,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공부가 끝나면 곧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 이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일도 많이 해야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꿈입니까? 그와 같은 꿈이 삶을 활기있게 만들어주지 않습니까? 무엇을 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대감을 줍니다. 그 희망과 기대를 갖고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시편 127편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지켜주시고, 일을 하셔야 일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일찌기 일어나고,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수고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계획을 세워주시고, 사람들을 붙여주시고, 경제 사정을 좋게 해주셔야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아니하시면 밤잠 못자고, 고생 고생해봐야 그 고생이 헛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봐야 잘 살게 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일을 하시고,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그렇게 수고하고 애쓰고, 고생하는 것이 의미와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정 기간 잘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젊어서 고생 고생하면서 앞 뒤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이제 살만하다 싶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악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꿈꾸고, 계획하고, 소원하는대로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고생해서 모은 돈도 한 순간에 종이 조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식을 투자하는 사람이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눈이 벌게질 정도로 신문보고, 자료보고,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고, 안정빵으로 투자했다고 하더라도 그 해 주식이 곤두박질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평생 고생하면서 모아두었던 돈,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쉽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렇게 평생을 사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사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과 뜻에 부합되게 살아가는 것인가?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진전과 발전과 영광에 보탬이 되는 것인가? 내가 이렇게 산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과 기준을 갖고 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몸에 딱 붙어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가치관과 판단기준이 여러분들 안에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는 실천적인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사는 것이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앙상의 오해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을 말씀해 주시고, 우리에게 그것을 해보라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다는 것. 그것이 첫 번째 오해입니다. 계획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일은 우리가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오해는 하나님께서 계획을 세우시든, 우리가 계획을 세우든, 우리가 힘을 내서 열심히 그 계획을 이루어 가다가 힘이 모자라면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기도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서 그 일을 마무리 짓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흔한 오해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기도한다는 것,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실 일을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란 말은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그것 조차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와 힘주심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처하게 자기 부족을 인정하고 고백하여 하나니의 도우심만을 갈망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친히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집을 세울 때, 성을 지킬 때, 무슨 사업을 할 때, 우리가 전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집을 지으실 수도 있고, 성을 지켜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우리들에게 맡겨 주셔서 그 일을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합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따라서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공부, 내가 지금 하는 사업, 우리 가정을 세우는 것, 아이들을 키우는 것, 직장을 잡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 내가 지금하고 있는 사회 활동, 내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행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전전긍긍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밤잠 못자고 이리궁리 저리궁리, 이런 노력, 저런 수고를 한다고 해도 그 일 자체를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면 결단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부합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헛수고를 했다는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별로 진전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속을 썩이는 자식들은 없나요? 아무리 노력해도 직장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아서 고생하는 분은 없으신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 하는데 남들처럼 보란듯이, 그럴듯하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서 하고 싶지요. 그것이 말처럼 쉽스빈까? 능력의 부족도 있겠고, 게으름도 있겠고,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요.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생각하는대로 되지 않는다고 끙끙거리면서, 이 사람 원망하고, 저 사람 원망하고,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시대를 잘못 만나서 태어났다고 불평한다고 일이 수월하게 풀어지겠습니까?

일이 수월하게 풀어진다고, 어떤 커다란 결과가 눈에 보이고,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주고, 칭찬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이 높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분별과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분별과 구분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닐 때도 있구요. 그러나 우리 자신의 문제, 저와 여러분들과 관련된 문제와 일에 대해서는 분별하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사이비인지.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인지는 적어도 진진하게 고민하고, 따져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올 한 해, 저와 여러분들이 어떤 믿음을 갖고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사는 길일까요?

제일 먼저,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에 말씀드린 것을 다시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만이 희망입니다. 주님 만이 나의 희망이요, 우리의 희망이요, 우리 교회의 희망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 사실을 올 한 해 여러분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깊이 담아두십시오. 기억력에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책상 앞에, 자동차 백미러 안에, 화장대 앞에, 냉장고 문에 붙여 놓으십시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에 여러분들의 희망을 걸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에게 학위를 주는 것은 여러분들의 교수가 아닙니다. 겉으로라야 그렇게 보이겠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어떤 교수라도 마음대로 여러분들에게 학위를 줄 수 없습니다.

취직을 하고, 직업을 구하고,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빽을 쓰고, 권력자의 도움을 얻어서 일을 꾸며보려고 노력합니다. 뇌물도 주고, 접대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자기 성을 쌓으려고 합니다. 밤잠 못자고, 고민하고, 뛰어다니고, 사람 만나고, 부탁하고, 맨 마지막에 기도나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말에 주목해 보십시오. “기도나 합니다” 잘 되면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일이 잘 풀리는데 기도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뛰어 다니다가 코너에 몰리면 그제서야 기도나 합니다. 기도는 언제나 뒷전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만이 나의 희망”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님만이 나의 희망”이라고 번역한 구절의 본래의 의미는 “내 영혼이, 나의 온 존재가, 그러므로 저를, 하나님만을 바라리라””하나님만을 앙망하리라” “하나님만을 희망으로 삼을 것이다””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셔야 나의 집이 세워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주셔야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우리 교회가 평안 가운데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을 하시고, 도와주셔야, 우리가 밤잠 못자고 하는 모든 수고가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고, 결과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떠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2: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했습니다. 그 웅덩이를 파느라고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겠습니까? 그렇게 수고하고 고생한 것이 헛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고 달려들면 이런 결과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소망과 소원을 하나님께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인정하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아니하시면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게는 아무 것도,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주께서 해주십시오. 주께서 세워주십시오. 주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기본적인 정신이요, 태도요, 기본적인 정서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과연 저와 여러분들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러분, 이 시편의 제목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 년에 세 차례씩,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어디에서 살든지 일 년에 세 차례씩 모든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가족들과 친척들과 함께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기나긴 여행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행길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으로 나아갑니다. 가는 길이 힘들고 어렵겠지요. 몇 날, 며칠을 걸어갑니다. 어스름한 저녁이 다 되어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강도의 위험도 있을 수 있고, 어두움 자체가 두려움을 주기도 할 것입니다. 오랜 여행에 지쳤을 것이고, 힘이 모자라 허우적거길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 마음이 밀려 들어올 때,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할 그 때에 이 성도는 눈을 들어서 산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겠는가?” 그렇게 말할 때 그 심령 깊은 곳에서 이런 음성이 나오겠지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렇구나. 나를 도와주시는 분은 다름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구나. 내면에서 이 음성을 들을 때 이 성도의 마음이 어떻했겠습니까? 감격스럽지 않았을까요?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담대함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이 성도의 마음 속에 계속해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걸음걸이를 인도해 주셔서 실족지 않게 해주신다” 내가 비록 어둠이 깔린 산 길을 간다고 하여도, 주께서 나를 지켜주셔서 실족지 않게 해주신다. 나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이스라엘을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결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우편에 계셔서 우리의 그늘이 되어 주시고, 낮의 해와 달의 밤이 우리를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시며, 내 영혼까지, 나라는 존재를, 사람으로서, 특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반듯하게, 정당하게,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으며, 새로운 피조물로서 고급한 성품과 인격과 인성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지켜주신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호해 주시고, 나의 일상의 삶, 나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인도해 주신다”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 순례의 길을 인도해주실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까지 다다를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죽을 때까지, 죽음을 넘어서 우리를 영원까지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편이 저와 여러분들의 시편이 된다면, 이 시인의 믿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우리와 우리 가정만을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하나님의 교회, 저와 여러분들이 몸담고 있는 성서교회를 전능하신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출입을, 우리의 행사를,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힘을 주시고, 역사하셔서 우리 교회를 세워가실 것입니다.  

젊은 엄마들은 아이를 낳으면 자기 자식이 어떤 자식이 될까? 어떤 자식이 되면 좋을까? 생각하고, 상상을 합니다. 이런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이런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기도도 하고, 즐겁게 상상도 합니다. 하나같이 모두 이상적인 아이입니다. 어디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로 키워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나쁠 것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이상적인 사람들입니까?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완벽한 사람입니까? 여러분들의 남편들이 그렇고, 아내들이 그렇습니까? 우리가 봐도 한심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부족한 것 투성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부모에게서 나온 아이가 어떻게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죄의 본성을 타고 나고, 아담의 죄악된 본성을 그대로 부모에게 물려 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이상적이고, 완전한 아이가 될 수 있겠느냐? 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부모 속을 썪일 것입니다. 지긋지긋하도록 말을 안들을 것입니다. 사춘기를 지나고, 머리가 조금 커지면 부모 말을 우습게 여깁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을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소 귀에 경읽기가 될 것입니다. 목사님 아이들은 그럴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특별히 악하고, 못된 죄악된 성품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모두 아담의 죄악을 타고난 아이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렸을 때 모두 그렇게 컸습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이 정도로 그럴듯한 사람들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식들을 여러분들이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절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식들을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키우시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지키시도록,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을 실족지 않게 하시고, 모든 악함과 어려움과 환난에서 지켜주시도록, 자식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고급한 인격을 손상시키거나, 타락시키지 않도록, 모든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기도나 하지”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고, 그의 자비와 긍휼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의 손에 맡기는 기도” 그것이 가장 우선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에 온전히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자식이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식이니까, 거룩한 목적과 뜻을 주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키우시도록 부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리 하실 것입니다. 아이들 때문에 너무 걱정하고 근심한 나머지 여러분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도 하지 못하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일을 하셔야 합니다. 가장이면 가장으로 충실하게 자리를 지키고, 아이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가정의 목사로, 선지자로, 하나님께 축복을 비는 제사장으로 그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셔야 합니다. 아내는 아내로서 돕는 베필로,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들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집안 일을 원망과 불평없이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비극은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모두 엄한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작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야 할 것은 우습게 여기고, 세상의 썩어질 것에만 혈안이 되어서 그것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몸부림치고, 얻지 못하면 원망하고, 낙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집을 지켜주시고, 우리의 성을 지켜주시고, 우리가 하는 일을 세워주셔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작고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크고 어려운 일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면 우리에게는 어떤 결과도 발생할 수 없습니다.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여러분들의 자리를 하나님께 비워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것, 오늘 나에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 그것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려고 노력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을 볼 때,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 어떻게 해야만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고, 주의 교회를 신령하고 순전하게 세워가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알려주신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성령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따라서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당장 눈 앞에 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성실하게 구하면서 올 한 해를 산다면, 한 해를 결산하는 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의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일의 결과가 크든 작든, 그것을 보고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며, 우리들이 살아야 할 일상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하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고, 주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에 우리의 몸을 실어 올 한 해를 힘차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